2009년 12월 23일
망할 사장
# by | 2009/12/23 18:58 | 一基一會 | 트랙백 | 덧글(1)
# by | 2009/12/19 00:00 | 一基一會 | 트랙백 | 덧글(6)
# by | 2009/12/17 23:23 | 一基一會 | 트랙백 | 덧글(6)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었다.
하루 6시간에 시급도 너무 짜지는 않아서 적당히 하면 용돈벌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가게 운영이 잘 안되는 터라 하루 3~4시간정도 하는것이 전부였다.
음 그만두어야 하나 싶었다.
지난 수요일 그만두겠다고 얘기했다. ( 뭐 좋게 좋게~)
당분간 급한 일이 있어서 오기힘들것같다고. 그러니까 그럼 아르바이트는 신경쓰지 말고
급한 일 부터 해도 괜찮다고 했다. 이 급한 일이 한달정도 걸릴거기 때문에 거의
그만두는것이 될것 같다고. 알겠다고. 일 다 끝나면 연락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왔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음 그만둔다는 내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기도하고
먼저 아르바이트비에 대한 얘기를 안하시길래 다음날 다시 찾아갔다.
제 일이 끝나는 날짜가 이러이러 하고, 너무 갭이 크니 다른 알바를 찾으시는 것이
좋겠다고. ( 이 정도면 그만둔단거 맞지?;) 그러니까 당분간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근데 앞으로 당장 돈이 들어갈 일이
있으니 아르바이트비를 계산해 주실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니 알겠다고 일 끝나고
연락하라며 웃으셨다. 음 -_-; 그래 그것 뿐이었다. 음....;
좀 당황해서 그런 대화를 마치고 나왔다. 그러니까 난 그만두니까 알바비를 계산해
달라구요....란 건데 왠지 안먹히는 기분?;
그래서 홀 매니저 정도 급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그만두게 됬고
사정이 급하니 아르바이트비를 언제 까지 계산해 줄 수 있느냐 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한번 이야기해 보겠다고 대답이 돌아왔다. 음....
그래서 난 내 계좌번호와 아르바이트비를 문자로 일단 보내 놓았다.
통상적으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지만, 급하게 그만두게 되더라도 보통
일주일 전이나 그 정도 전에 얘기를 하면 마치는 날에 아르바이트 비를 계산해서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수요일에 그만두게 될 것 같다고 얘기 할때도
당장그만둔다고 하지 않고 토요일이나 일요일 까지도 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네 일이 우선이니 가게는 생각하지 말고 그만두어도 좋다고 했기 때문에
말을 꺼낸 날에 그만 두게 된 것이지 내가 바로 그만둔다고 억지 부리지 않았다.
또한 내가 하는 타임에 손님이 거의 없었고, 충분히 내가 없어도 운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만둔다고 해서 큰 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근데 솔직히 알바하는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에
알바비를 계산받아야 하고, 사장님들이 먼저 챙겨주는 것이 가장 좋지만
안 그렇다면 내가 챙겨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말을 꺼낸 것인데 약간
얼렁뚱땅 넘기는 기분이 들어서 좀 뭔가 싶었다.
다음날, 아무 말이 없길래 다시 전화를 했더니
얘기를 해보니까 내가 들어온 날짜에 알바비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 10여일이 남은 상황 이었고
그만두게 되었는데 굳이 들어온 날짜까지 기다려야 되는지 잘 모르겠었다.
그만두는데 보통 월급 날짜 맞춰서 그만두나?;
그리고 알바한 동네에 계속 머무를 것이 아니었고
다시 올 일이 없었고 내가 그 가게에서 일을 했었다는 기록도 전혀 없고
구두로만 약속을 나중에 주겠다라는 약속을 받은 것이어서
요즘 세상 각박하다는데 혹여나 잊으실까봐 좀 걱정이 됬다.
그래서 친구랑 얘기해보니 차용증이라도 하나 받는게 어떤가 싶어서
어떻게 쓰는지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려고 ㄱㅊ 아저씰 찾아갔다. ㅋ
근데 이 아저씨가 내가 말한 가게를 안다면서 그 가게에 전화를 한통 해주겠다며
굳이 해주셨다. (괜찮다고 그랬는데 ㅠ) (근데 알고보니 딴 가게에 했음;;)
그 가게에 친구랑 다시 가서, 난 ㄱㅊ이 전화한 줄 알고 혹시 그런 전화
받으셔셔 놀라지 않으셨냐고 하니까 그런전화 받은적 없댄다 ( 헉 ...;)
그러면서 고작 이런 일 가지고 ㄱㅊ 에게 갔었냐며 화를 내기시작
(아니 그러니까 그냥 경찰아저씨가 좀아는 아저씨였던 터라 도와준답시구
전화 해준건데 ㅠ ...젠장...고발하러 간것도 아니고 그냥 물어보러 간거라구)
내 친구는 내 상황을 설명하고자 따박따박 말하기 시작했으나
그 집 딸래미와 시비가 붙어 버렸다... 둘다 한성격 하는 터이긴 했지만
친구가 좀 말을 꼬박꼬박 대꾸하긴 했어도 그 딸도 장난 아니어서
어디서 그런 버릇으로 말을하냐 말대꾸를 하냐 로 시작해서
꺼지라는 둥 맷돌로 입을 간다는 둥 완전험한 소리로 욕하기 시작한 그쪽.
돈 그거 몇백만원 되는 것도 아니고 몇십만원 가지고 뭐하는 거냐는 둥. ㅋ
아니 그러니깐 난 구두로만은 얘기가 되어서 좀 걱정도 되고 다시 올 일도
없고 해서 단순히 일했으니 준다는 뭔가 확답을 듣고 싶기도 하고 증거도
갖고 싶어서 온거지 싸우러 온게 아니란 말이다 근데 경찰 갔다왔다는 소리와
차용증 소리에 그럼 각서를 쓰라는거냐며 화를 내고 욕을하고 쫓아내고. -_-;
아마 그 분들은 내가 그만두고, 내게 알바비를 계산해 주는 것을
차선의 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나 본데
나는 일을 마무리하면서 빨리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었던 건데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재수없다며 나가라고. 꺼지라고.
참 살다살다 오랜만에 욕 푸지게 들었다.
그리고 그 가게 딸에게 전화가 와서
너희의 행동이 얼마나 무례하고 예의없었는지 미안한걸 인정하고
와서 빌라고 했다...-_-;;; 아니 가서 테이블이나 엎고 컵이나 좀 깨고
험악한 아저씨 좀 데려가서 돈 당장 내놓으라고 협박했으면
깽판 이나 쳤다고 인정하겠는데 것도 아니고
어린 여자애 두명 가서 좀 얘기했기로서니 뭐가 그리 깽판인가.
난 심지어 싸움 말리느라 욕도 한마디 못했다고.
그리고 내가 이 전날 갔을 때도 급하니 언제 줄수 있는지 말해 달라고
두어번 얘기했었는데 다 귓등으로 흘리고 먼저 연락도 한번 주지 않아
걱정되게 만들고 신뢰도 전혀 갖지 못하게 만들었으면서.
제일 어이없었던건 네 친구가 버릇없게 군 것을 네 친구과 와서
사죄한다면 알바비를 빨리 주고, 그렇지 않다면 늦게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사장이니 내가 주지 않으면 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거 협박 아냐?;
세상 참 더럽더라구 퉤
# by | 2009/12/13 19:05 | 트랙백 | 덧글(6)
# by | 2009/12/04 10:07 | 一基一會 | 트랙백 | 덧글(6)
# by | 2009/11/22 19:08 | 트랙백 | 덧글(2)
세계 1차 대전에 대해서 하나 만들어볼까 하고 하는데요 ㅋㅋ
좀 웃겨서 ㅋㅋ
영국 [편집]
영국에는 아래와 같이 이런 글귀가 적힌 참전 포스터들이 존재했다. 1915년에서 1916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거 좀 짱인듯...ㅋㅋㅋ 우리나라도 이 구호를 씁시다...
# by | 2009/11/17 15:37 | 一基一會 | 트랙백 | 덧글(1)
1. (가), (나)에 관한 옳은 설명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가)
제1차 세계대전 시였던 1916년 1월부터 잡지 스파르타쿠스브리펜(Spartakusbriefen)을 발행하였고 후에 독일공산당으로 개칭하였다. 독일 사회민주당(SPD) 내의 극좌 성향의 당원들이 탈퇴하여 결성되었다. 1919년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단원인 카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와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가 체포되어 1월 15일 처형당했다.- 스파르타쿠스단
(나)
·국유지 임차권은 상속하지만 양도할수는 없다.
·1,000유게라 이상의 토지는 국가에 반환하고 보상을 받고 반환된 토지는 농민에게 재분배하고 국고에서 보조금을 지급한다.
·국유지 임차 상한선을 500유게라(jugera)(약 1.3㎢)으로 정하고 아들의 명의로 한명당 250유게라까지 인정하지만 전체 가족(한 가문)이 1,000유게라을 넘기지 못한다.
- 리키니우스 법 아님.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농지개혁 임돠 ㅋㅋㅋ
< 보 기 >
ㄱ. (가) 단체의 모델이 되었던 반란의 목표는 신분 평등과 참정권 획득(땡)을 위한 투쟁이었다.
ㄴ. (가)는 계급투쟁의 전개, 즉각적인 평화를 주장하며 합법적 운동을 전개하여 중산계급과 농민·노동조합 기타 대중조직의 지지를 받았으나(떙) 심한 탄압을 받았다.
ㄷ. (나)는 당시 사회에서 빈부 격차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음을 보여 준다.
ㄹ. (나)를 추진한 인물은 아탈루스 왕의 유산을 사용하여 자작농에게 보조금을 주자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원로원의 반감을 샀다.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2. 다음 (가) 와 (나)의 논쟁에 대해 옳은 것을 고르시오. -은총론 논쟁
(가) -펠라기우스
아담의 죄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한 사람에게 국한되었으며, 그의 자손들은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상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인간의 죄의 원인이 아담의 원죄 때문이 아니라 죄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의지로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의식적인 선행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어거스틴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과 악에 대한 선택권을 동시에 주셨지만, 인간은 스스로 악을 택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담의 원죄로 인류 전체가 완전 타락하게 되었고, 타락한 인간은 더 이상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상실했다고 생각했다.
① (가)는 인간은 죄의 결과로 죽는다고 주장했다. -죄때문이 아니라 죽게 태어난 것임.
② (가)는 어거스틴주의, (나)는 알미니안주의에 해당한다. -반대
③ (나)는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만 있다고 주장했다.
④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토대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꾀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
⑤ 종교 개혁 당시(가)의 주장은 루터, (나)의 주장은 에라스무스에 해당한다. -반대
3. 다음의 내용이 설명하는 ‘전쟁’의 적절한 사례를 <보기>에서 고른 것은?
·종교 개혁은 유럽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중세 교회의 통제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켰다.
·그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되기도 했으나, 점차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확대되었고,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관용의 정신이 빠져 나갔다.
<보기>
ㄱ. 백년 전쟁 ㄴ. 30년 전쟁 ㄷ. 네덜란드 독립 전쟁 ㄹ. 나폴레옹 전쟁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4. 지도가 나타내는 시기의 A~D 국가에 대한 옳은 설명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ㄱ . A - 민주적인 바이마르 공화국을 수립하고 보통 선거를 실시하였다.
ㄴ . B - 경제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국과 식민지를 묶는 블록 경제 정책을 실시하였다.
ㄷ . C - 마셜 계획에 힘입어 ‘라인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ㄹ . D - 파시스트 정권이 에스파냐 내전에서 군부 반란 세력을 지원하였다.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 by | 2009/09/26 10:41 | 배회하다 | 트랙백 | 덧글(1)
1. (가), (나)에 관한 옳은 설명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가)
제1차 세계대전 시였던 1916년 1월부터 잡지 스파르타쿠스브리펜(Spartakusbriefen)을 발행하였고 후에 독일공산당으로 개칭하였다. 독일 사회민주당(SPD) 내의 극좌 성향의 당원들이 탈퇴하여 결성되었다. 1919년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단원인 카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와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가 체포되어 1월 15일 처형당했다.
(나)
·국유지 임차권은 상속하지만 양도할수는 없다.
·1,000유게라 이상의 토지는 국가에 반환하고 보상을 받고 반환된 토지는 농민에게 재분배하고 국고에서 보조금을 지급한다.
·국유지 임차 상한선을 500유게라(jugera)(약 1.3㎢)으로 정하고 아들의 명의로 한명당 250유게라까지 인정하지만 전체 가족(한 가문)이 1,000유게라을 넘기지 못한다.
< 보 기 >
ㄱ. (가) 단체의 모델이 되었던 반란의 목표는 신분 평등과 참정권 획득을 위한 투쟁이었다.
ㄴ. (가)는 계급투쟁의 전개, 즉각적인 평화를 주장하며 합법적 운동을 전개하여 중산계급과 농민·노동조합 기타 대중조직의 지지를 받았으나 심한 탄압을 받았다.
ㄷ. (나)는 당시 사회에서 빈부 격차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음을 보여 준다.
ㄹ. (나)를 추진한 인물은 아탈루스 왕의 유산을 사용하여 자작농에게 보조금을 주자고 주 장했는데 이것이 원로원의 반감을 샀다.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2. 다음 (가) 와 (나)의 논쟁에 대해 옳은 것을 고르시오.
(가)
아담의 죄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한 사람에게 국한되었으며, 그의 자손들은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상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인간의 죄의 원인이 아담의 원죄 때문이 아니라 죄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의지로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의식적인 선행으로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과 악에 대한 선택권을 동시에 주셨지만, 인간은 스스로 악을 택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담의 원죄로 인류 전체가 완전 타락하게 되었고, 타락한 인간은 더 이상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상실했다고 생각했다.
① (가)는 인간은 죄의 결과로 죽는다고 주장했다.
② (가)는 어거스틴주의, (나)는 알미니안주의에 해당한다.
③ (나)는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만 있다고 주장했다.
④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토대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꾀하였다.
⑤ 종교 개혁 당시(가)의 주장은 루터, (나)의 주장은 에라스무스에 해당한다.
3. 다음의 내용이 설명하는 ‘전쟁’의 적절한 사례를 <보기>에서 고른 것은?
·종교 개혁은 유럽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중세 교회의 통제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켰다.
·그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되기도 했으나, 점차적으로 신앙의 자유가 확대되었고,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관용의 정신이 빠져 나갔다.
<보기>
ㄱ. 백년 전쟁 ㄴ. 30년 전쟁 ㄷ. 네덜란드 독립 전쟁 ㄹ. 나폴레옹 전쟁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4. 지도가 나타내는 시기의 A~D 국가에 대한 옳은 설명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ㄱ . A - 민주적인 바이마르 공화국을 수립하고 보통 선거를 실시하였다.
ㄴ . B - 경제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국과 식민지를 묶는 블록 경제 정책을 실시하였다.
ㄷ . C - 마셜 계획에 힘입어 ‘라인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ㄹ . D - 파시스트 정권이 에스파냐 내전에서 군부 반란 세력을 지원하였다.
① ㄱ, ㄴ
② ㄱ, ㄷ
③ 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 by | 2009/09/22 20:46 | 배회하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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